제 10장. 합격, 그 후...



"저는 결국 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것입니다.
앞으로도 또 어떤 고난이 닥친다고 해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김득구(영화 ‘챔피언’의 실제 모델), 동양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하고 첫 인터뷰 中





누군가 내게, 재수에 삼수까지 했던 2년의 시간이 아깝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그 2년의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난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할 것이다.




누군가 내게, 수능점수가 만족스럽지 않아 재수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당신의 각오 여하에 따라, 그리고 당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그 1년은 당신의 인생을 통째로 바꾸어 버릴 수도 있다고 답할 것이다.




재수 1년쯤은 확실히 해볼 만도 한 것 같다. 동기들 중에도, 후배들 중에도 재수, 삼수를 거친 학생들이 꽤 있다. 이런 동기들, 후배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확실히 현역으로 대학에 온 아이들보다는 말하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훨씬 깊고, 무엇보다 자신과의 싸움을 거쳐 인생의 쓴 맛을 알았기에, 인생을 대하는 자세에서도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삼수부터는 조금 말리고 싶다. 가능하면 재수에서 끝내라. 자칫하면 수능 중독에 빠질 우려도 있으며, (잘못 빠지면 4수, 5수까지 가는 사람도 종종 있다.) 무엇보다 삼수는 정말 인간이 할 짓-_-이 못되기 때문이다. 정말 죽을만큼 고생했고, 죽을만큼 힘들었다. 물론 그랬기에 삼수에서 끝낼 수 있었지, 죽을거 같아서 적당히 했다면 나 역시 n수(n>3)의 길을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역이든 재수든 삼수든, 중요한 것은 햇수가 아니다. 그 과정을 얼마나 알차게 보냈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티치미’의 한석원 선생님께선 고등학교 때 자신이 했던 노력을 당당하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적어도 그 사람이 ‘사람’이라면, 당시의 나보다 더 열심히 공부할 수는 없다.” 한석원 선생님은 당시 펜을 하도 오래 잡아 손가락의 근육이 잘못되어 지금은 남들이 잡는 것처럼 펜을 잡지 못한다고 하신다. 공부를 하겠다면 이처럼, 내 인생에서 딱 1년,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게 살았다고 말 할 수 있는 1년을 만들겠다는 각오로 공부에 임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안광(眼光)이 지배(紙背)를 철(徹)하다. (눈빛이 종이를 뚫는다.) 그것이 청춘의 이름이다.”

                                                                         - 양주동







잠시 내가 합격의 감격을 누렸던 그때로 돌아가 보자.




결코 잊을 수 없는 2005년 8월 24일. 4시에 학원 수업이 마치고 자습을 하다 오후 5시가 되었다. 근처 고시원에 살던 친구와 함께 자습을 몰래 빠져나와 그 친구의 방으로 갔다. 평소 같으면 스스로 결코 용납하지 못할 행위였지만, 들뜬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학원 동기들은 하루 전부터 ‘내일이면 형 못 보겠네요.’ 따위의 말로 내게 부담을 천배 만배 가중시켜 주곤 했다. 마음을 비웠다고는 하지만, 들뜬 마음은 도무지 제어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빨리 불합격을 확인하고 다시 수능공부에 전념하고 싶었다.




친구의 노트북을 켜고 고려대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해 보았는데, 합격자 발표 때문에 접속자가 몰려 30분이 넘도록 창이 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초조한 기다림 끝에 창이 떴고, 친구와 난 떨리는 손으로 마우스 스크롤을 내렸다. 차마 볼 수가 없었다.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도 두려웠다. 이것으로 또 용기를 잃지는 않을까. 이제 100일여 남은 상황에서 또 슬럼프에 빠지진 않을까. 스크롤을 돌리던 그 짧은 순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쳤다. 그러던 중, 무언가 내 눈 속을 파헤쳐 뚫고 들어오는 기분을 느꼈다.




타는 목마름으로 부르짖던 그 한 문장...




“ 축하합니다. 합격하셨습니다. ”




잠시 동안 내 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비명은 조금 후에 터져 나왔다. 작은 고시원 안에서 친구와 함께 온 고시원이 무너져라 소리를 질렀다.




교실로 돌아오는 나에게 친구들은 우렁찬 박수를 쳐주었고, 난 반 친구들과 그 시간에 남아 계신 교무실 선생님 모두에게 음료수 하나씩을 돌리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우선 간단한 짐만 몇 가지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글쎄, 수시 1학기에 합격하고 나면 남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일을 할지 모르겠다. 남들보다 몇 개월이나 먼저 입시를 마쳐 버렸으니, 친구들의 온갖 부러움을 한 몸에 사며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온갖 자유를 한껏 만끽하고,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그동안 놀고 싶었던 모든 것을 다 해보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난 집으로 돌아오던 그날 내 눈앞엔 또다시 내 친구 J군의 모습이 떠올랐다.




‘두고봐, 이제 시작일 뿐이야.’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합격한 당일, 하루쯤 푹 쉬어도 좋으련만, 이미 내 또래 친구들보다 2년이나 뒤진 내게 놀고 있을 여유 따위는 없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나만의 문법 교재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이미 대부분의 준비는 끝나 있었다. 학원을 다니며 필요한 내용, 넣고 싶은 내용들은 이미 수첩에 가지런히 정리를 해 둔 상태였다. 뼈대는 이미 완성되어 있었고, 이런저런 자료를 뒤져 살만 붙여나가면 되었다. 교재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한번은 평소에 친했던 친구들 몇을 몰래 조용히 불러 학원 앞 피자집에서 점심을 샀다. 그러던 중 특별히 친했던 재수생 하나가(나와 함께 합격을 확인했던 그 녀석) 농담조로 말을 꺼냈다. ‘형, 형은 합격했으니까 이제 주말마다 나와서 우리 영어 과외 시켜줘.’ 그 말이 시작이 되어 그 자리에서 발족식-_-을 거쳐 과외 팀이 결성되었다. 형님, 형님, 하며 나와 친하게 지냈던 재수생 4명을 그룹지어, 매주 일요일마다 고시원 지하 회의실에 모여 수업을 했다. 그 녀석들에겐 공짜로 영어 과외를 받을 수 있는 기회였고, 나에겐 내가 처음으로 만든 교재로 실험... 아, 아니, 연습;;을 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우린 ‘메가스터디MEGASTUDY’와 ‘쎄듀CEDU’를 뛰어넘자며, 둘의 이름을 합친 ‘메듀MEDU-_-’를 결성하였다. 수능이 끝난 뒤 MEDU 1기-_- 네명 중 두명은 서울대에 합격했고, 한명은 고려대에 합격하여 나와 동기가 되었다. 그리고 한명은 안타깝게 삼수를 하였는데, 1년 후 카톨릭대 의대에 합격하였다.




그리고 난, 그해 9월부터 수능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바빴던 두달을 맞이한다. 당시 난 무려 12개의 과외를 했다. 하루에 4개에서 5개씩의 과외 수업을, 교회가는 하루를 제외하곤 일주일 내내 반복했다. 재수할 당시 김기훈 선생님의 수업을 듣던 중, 선생님께서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12개의 과외를 했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나 선생님을 뛰어넘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시간을 짜낼 수가 없어 아쉽게도 타이 기록에 그치고 말았지만, 당시의 내 하루 일과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




7:00 기상

8:00 집 출발

9:00-11:00 과외 1

11:00-12:30 점심 및 다음장소로 이동

12:30-14:30 과외 2

14:30-15:30 다음장소로 이동

15:30-17:30 과외 3

17:30-18:30 저녁 및 다음장소로 이동

18:30-20:30 과외 4

20:30-21:00 다음장소로 이동

21:00-23:00 과외 5

23:30 집 도착




이렇게 아침 8시에 집을 출발하여 4개 혹은 5개의 과외를 하고 11시 이후에 집에 귀가하였다. 나중에 선생님께 직접 여쭈어보니 선생님은 12개가 아니라 18개란다-_-;;; 위 시간표를 보면 알겠지만 12개도 거의 한계에 달했던 것인데, 어떻게 18개가 가능하냐고 했더니, 아파트 한 채 안에서 과외를 구했던 것이라 이동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란다. 언젠가 19개를 목표로 다시한번 도전해 봐야 겠다.-_-;;




하여간 당시의 난, 마치 모든 기회를 다 잡기 위해 수시모집에 지원했던 것처럼, 내게 다가오는 기회라면 아무리 작은 기회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나 하나가 후에 내게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리가 아무리 멀더라도 마다않고 수업을 하러 갔는데, 서울 방방 곡곡에 가보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내가 사는 곳이 1호선 회기역 부근인데, 북서쪽으로는 일산과 김포공항, 북동쪽으로는 의정부, 남서쪽으로는 안양, 남동쪽으로는 대치, 대청역 부근까지. 어떤 과외는 수업 시간이 2시간인데, 거기까지 왕복으로 다녀오는 시간이 3~4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가끔 후배나 동기들이 과외자리좀 구해달라고 해서 넘겨주려 하면, 고작 30~40분 거리를 멀다고 고민하곤 하는데 뭐라 참 할말이 없다.

  

계산해보니 한주에 44시간의 수업을 했다. 고3이나 재수생들이 대부분이었으며, 내가 직접 제작하여 9월쯤에 완성한 나만의 첫 문법 교재를 가지고 파이날 문법 수업을 했고, 2년동안 내가 틀렸거나 어려웠던 독해 문제들을 모아 또 하나의 문제집을 만들어 독해 수업을 했다. 오르비 사이트에서도 많은 활동을 했는데, 외국어 게시판에서 질문글에 답변을 달아주거나 학습게시판에 나만의 모의고사 해설 강의를 문서로 작성하여 올리거나 하는 식이었다.




수능이 끝나고 해가 넘어가 대학 입학 날짜가 다가왔다. 당시의 난 대학시절에 달성하고 싶은 3개의 목표가 있었다. 우선 첫 번째는 경제적인 독립이었다. 이것 역시 김기훈 선생님의 영향이 컸는데, 선생님께서는 삼수를 마치는 순간부터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했다고 하셨다. 부모로부터 경제적인 독립을 이루고 나서야 비로소 부모의 영향력 아래에서 벗어나 나만의 삶, 나만의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학비를 비롯하여 모든 용돈과 생활비를 스스로 마련하겠다고 다짐했다.




두 번째는, 이것은 누구나 꿈꾸고 있는 것이겠지만, 여자친구를 사귀어 멋진 사랑을 해보고 싶었다. 여자친구(혹은 남자친구), 그것은 모든 수험생들이 꿈꾸고 있는 대학생활의 핑크빛 로맨스가 아닌가.




마지막 세 번째. 주위 사람들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보통 과외에 연애까지 하게 되면 학교생활은 개판이 되어 성적은 바닥을 기게 된다고. 하지만 남들이 어떻게 되었다 하는 것은 더 이상 내게 아무런 망설임도 주지 못했다. 난 이미 2년간의 경험을 통해 나 자신을 이기고 극복하는 경험을 해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세 번째 목표는 학교에서 성적 우수 장학금을 타내는 것이었다.




입학 후 채 일년이 지나기 전, 첫 학기만에 세 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했다.




우선 대학에 입학하기 전 겨울, 운명의 여인을 만났다. 무슨 정신으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그 운명의 여인에게 고백하기 위해 카페 하나를 빌렸다. 몰래 바이올린과 꽃을 숨겨두고, 카페 주인(주인이 캐나다 사람이었는데, 외국인이라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이 좀 덜 민망했다.)과 짜고 미리 준비한 음악을 카페에 설치해 두었다. D-Day. 아무것도 모르는 척 예쁜 카페가 있다며 데려가고, 준비된 음악이 나올 때 분위기를 잡고 밤새 외운 고백 멘트를 날렸다. 그리고 다음 음악인 엘가의 ‘사랑의 인사 Salute D'amour’의 피아노 반주(MR)가 배경음악으로 나올 때 숨겨둔 바이올린을 꺼내 이 곡을 라이브로 연주하였다. 주인장의 ‘BRAVO!’하는 외침과 함께 여기저기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곡이 나올 때 숨겨둔 꽃을 꺼내어 고백을 마쳤다. 그 날부터 우리 둘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4년째 사랑을 불태워 오고 있다. 그리고 그 주인장은 지금도 날 ‘최고의 로맨티스트’라고 부른다.




또한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12개의 과외를 하며 등록금과 생활비를 모두 마련하였고, 입학한 후에도 꾸준히 4~5개의 과외를 하여 생활비는 물론 저축까지 하였다. 대학에 온 이후로 일요일에 쉬거나 놀아본 적이 없다. 학교를 다니며 4~5개의 과외를 하려면 보통 과외는 한주에 두 번씩 하기 때문에, 월화수목에 하나씩 배치를 하고 일요일에 4개를 몰아서 배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의 일요일 일과는 위에 써 두었던 하루 일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방학 땐 9개의 과외를 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허리가 휘는;; 데이트 비용은 물론, 생활비와 등록금까지 모두 내가 벌어서 내고 있다. (장학금 덕분에 등록금은 50~70% 정도만 내면 되었다.)




그리고 세 번째. 1학년 1학기 성적을 스트레이트 A로 (4.29/4.5) 1학년 과수석을 하며 장학금을 받았다. 1학년 2학기엔 성적이 조금 더 올랐다. (4.32/4.5) 따라서 장학금은 당연히 받았다. 2학년 1학기였던 지난 학기는 재수할 때부터 꿈이었던 유럽 배낭여행 준비 때문에 성적은 조금 떨어졌지만 (처음으로 A아래 점수인 B+을 받아보았다.-_-) 장학금은 놓치지 않고 받았다.




혹자는 내가 천재이냐 묻기도 하는데, 난 고등학교 때 아이큐 검사에서 아이큐가 108밖에 나오지 않아 충격을 받은 적이 있는, 평범하디 평범한 머리를 가지고 있다. 사실 공부란 것은 누가 머리가 좋고 나쁘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더 좋은 수업을 받기 위해 과외나 학원을 찾기도 하는데, 공부의 성패는 여기에 있는 것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공부할 ‘의지’가 있느냐 하는 것이고, 그 의지를 정말 실행에 옮길 ‘능력’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단지 의지만으론 부족하다. ‘공부해야지’ 하는 마음가짐 정도야 누구나 가지고 있다. 거창한 계획도 누구나 세울 수 있다. 하지만 실천하지 못한 계획은 그저 쓰레기가 될 뿐이다.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




이렇게 바쁜데 도대체 언제 공부를 하느냐고, 어떻게 이런 성적관리가 가능하냐고 내게 묻는 경우가 많았다. 그냥 한번 씨익 웃고 말았지만, 사실 그들에겐 자신의 생활을 먼저 한번 돌아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대학생이 되고 나면 시간이 엄청나게 남는다. 다만 수험생만큼의 열정과 각오가 부족할 뿐이다, 스스로 잡담, 술, 게임, 인터넷, 노래방, 당구, 만화, 잠 등에 낭비한 시간과 공부에 투자한 시간의 비율을 계산해 본다면 남 성적 좋은걸 부러워 할 이유는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런 단순한 것을 깨닫는 대학생은 극도로 적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볼 줄 아는 자에게만이 발전의 가능성이 있다.




솔직히 난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하기엔 조금 부끄럽다. 스스로 나의 생활을 돌이켜 보았을 때, 여전히 다른 짓을 하며 게으르게 낭비해 버린 시간이 많이 때문이다. 재수할 때 1분 1초까지 아껴가며 치열하게 공부했던 경험에 비하면 지금의 난 턱없이 나태하고 게으를 뿐이다. ‘치열’. ‘극기’. 말로는 참 쉬운데, 사실 그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사실 비결이랄것도 없지만, 내 성적 관리 비결을 조금 공개해 보자면 바로 ‘계획’과 ‘실천’에 있다. 재수생활 때 했던 ‘분단위 계획표’가 내게 매우 소중한 능력을 얻게 해주었다. 바로, 계획에서의 정확성과 그 실천 능력이다.




사실 공부할 때 계획을 세우는 것은 누구나 하고 있겠지만, 그걸 그대로 달성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다. 나도 재수시절, ‘내가 세워놓은 계획을 도대체 왜 다 해내지 못하는가’하는 엄청난 고뇌에 빠진 적이 있었다. 계획을 세워 공부해 본 학생이라면 다음과 같은 내 경험을 공감할 것이다. 한달간의 계획을 정말 자세하고 꼼꼼하게 세워 놓았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그 계획표에서 달성하지 못한 것이 생긴다. 날짜가 지날수록 밀리는 것은 점점 많아, 일주일쯤 지나고 나면 그 밀린 양만으로도 하루 이상이 걸릴 정도가 된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한달간의 그 꼼꼼한 계획표를 죄다 지워버리고 새로 계획을 짜야 한다.




이것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수차례, 수십차례 반복된다. 이제는 한달간의 계획을 짜는 것이 너무 지겹고 힘들어서 (한번 짜려면 족히 두시간은 걸렸다.) 일주일씩 짜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것조차도 밀리는 경우가 많아, 계획을 썼다 지웠다 한 것이 수도 없을 정도이다. 자꾸 나태해지고 게을러져 계획대로 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자신을 저주하고 비난하고 심지어 혐오하기까지 했다. 아무리 다짐을 하고, ‘이번엔 꼭!’ 하며 아무리 다짐을 해보아도 결국은 또 밀리는 일이 생기고... 나중엔 지쳐서 아예 계획을 세우지 않고 며칠간 공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중요했던 것은, 분 단위까지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이행하는 과정 속에서, 나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깨달았다는 점이다. 난 대학교에서 대략 시험 1~2주 정도부터 시험공부를 시작하는데, 이제는 ‘어느 과목의 시험범위가 얼마큼이라면, 대략 몇 시간정도 공부하면 되겠구나’하는 견적이 거의 정확하게 나온다. 이를 바탕으로 ‘얼마정도 전부터 시험준비를 하면 되겠구나’하는 계산이 나오고,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철저하게 그 계획을 실천하면 적어도 A이상의 점수가 나온다. 물론 자신에게 만족스러울 만큼 철저하지는 못했기에 A+을 받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기도 하고 말이다.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한다. ‘참 한심하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그렇게 공부만 하는건 바보같은 짓이다. 나중에 언제 그렇게 놀아보겠냐. 1, 2학년 땐 좀 놀아도 된다.’ 그런 사람에게 묻고 싶다. 그러는 당신은 얼마나 뿌듯하고 보람찬 일학년을 보냈는가? 그렇게 당신 말대로 밤새 술먹고, 게임하고 놀다가 다음날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 ‘아, 최선을 다해 게임을 하면서 밤을 새웠구나’하며 가슴 한켠이 뿌듯해지는 보람이 느껴지는가? 최선을 다해 공부를 하며 밤을 지새우고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동은, 그대의 보람찬 일학년에 비교하기엔 너무도 아름답고 숭고하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1년 365일, 하루 왼종일 공부만 하고 사는 줄 아는데, 사실 나보다 취미 생활이 많은 사람도 드물 것이다. 중학교때부터 오디오를 만지기 시작하여 고등학교땐 청계천 부품상가를 뒤져 만능기판에 납 연기를 마셔가며 수많은 오디오 앰프를 자작하기도 했고, 지금은 내 방에 스크린과 프로젝터를 이용하여 홈씨어터를 만들어 두기까지 했다. 3평이 채 안되는 작은 방에 2대의 앰프와 무려 11개의 오디오 스피커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또한 어렸을 때부터 음악(바이올린)을 해오던 것이 취미가 되어 오래전부터 함께 활동하던 친구들끼리 모여 작은 실내악 그룹을 하나 만들었다. 시간이 날때면 교회방문을 다니기도 하고 병원에서 작은 공연을 하기도 한다. 한때 클래식기타에 미쳐 '알함브라의 궁전'을 쳐보겠다고 클래식기타 학원에 다니기도 했고, 노래를 배워보고자 뮤지컬 발성 레슨을 받기도 했다. (대학생이  되었다면 이런 것 부모님 손 좀 빌리지 말아라. 자기 하고 싶은게 있으면 스스로 벌어서 당당하게 하자. 그래야 더 열심히 하게 되고, 재미도 배가된다.)
재수때부터는 커피에 미쳤는데, 인스턴트 커피만 마시다 신선한 커피를 한번 마셔보자 하고 시작하여 지금은 커피 로스터(Roaster)를 직접 자작(DIY)한 후 커피 생두를 사다 직접 집에서 볶아서 마실 정도의 커피홀릭이다.
 또 중학교때는 천문에 미쳐있던 적이 있었기에 지금도 산골짝으로 놀러갈 때면 친구들 몇을 데리고 나와 밤하늘을 보며 별자리를 보는 법을 알려주거나, 카메라로 천체 사진을 찍곤 한다. 사진을 취미로 한지도 꽤 오래되어 몇개의 카메라와 렌즈를 가지고 있는지 나조차 헷갈릴 지경이다. 지금이야 디지탈 카메라를 쓰지만, 중고등학교시절 필름카메라로 찍었던 사진만 한박스다. 그중 대부분이 천체사진이긴 하지만.
같이 재수를 했던, 체대 입시를 지망했던 그 친구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매일같이 함께 농구를 하며 운동치였던 내게 농구를 가르쳐 주었다. 지금도 심심할때면 공 하나 들고 대학 운동장으로 가 다른 대학생들과 섞여 게임을 하기도 한다. 작년부터는 오토바이를 한대 구입하여 답답할 때면 타러 나가기도 한다. 한때 게임 프로그래머가 꿈이었던 만큼 온라인 게임과 스타크래프트에 미쳐 학교 내에서 길드를 창단한 적도 있었다. 지금이야 실력은 한물 갔지만 스타리그는 관심있게 지켜보며 결승전은 빠짐없이 시청하고 있다.

얘기가 잠시 샜다. -_- 아무튼 하고자 하는 말은, 놀땐 열심히 놀고 공부할땐 열심히 공부하자는 것이다. 노는것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 대학생이 진짜 멋진 대학생 아니겠는가?



이렇게 대학 공부는 수능 공부의 연장이다. 수능 때의 생활 습관과 공부 습관은 대학에서의 그것과 고스란히 닮게 된다. (물론 대부분은 대학에서 더욱 나태해지지만.) 수험생이 가장 피해야 할 마음가짐 중 하나는 바로 ‘앞으로 인생에 도움도 안되는 이런 과목을 뭐하러 공부해야 해?’ 하는 것이다. 사실 그 당시에 배운 지식이 나중에 어떤 기회에서 빛을 발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일뿐더러, 이것보다 중요한 것은 공부의 내용 자체가 아니라, 수험생 시절에 만들어진 공부의 ‘습관’이 평생의 공부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공부가 답답할 땐 눈을 좀 더 크게 뜨고 조금만 더 앞을 내다보라.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공부는 단지 수능 점수 몇 점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당신의 남은 평생을 위한 공부이다.







재작년, 즉 1학년 여름 즈음, 쎄듀 컨텐츠 개발팀에서 연락이 왔다. 쎄듀에서 객원 연구원으로 일해 볼 생각이 없냐는 제의였다. 그동안 경험이라곤 과외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칠 이유가 없었다. 쎄듀에서 학습지에 칼럼을 기고하는 것을 시작으로 여러권의 교재를 썼는데, 그중 김기훈 선생님 GOD 강의 교재의 95% 가량을 직접 기획, 집필하게 되었고, 외국어 베스트셀러인 ‘어법끝’의 일부분 원고도 쓰게 되었다.




또한 이투스에서도 컨텐츠 공급, 문제집 검토위원 등의 활동을 했고, 탑모아(자이스토리와 계약을 맺고 자이스토리 교재로 수업하는 인터넷 강의 사이트...였지만 지금은 망했다-_-)에서는 최초로 인터넷 강의에 데뷔까지 하게 된다.




난 지금 이렇게, 누구보다도 뜨거운 가슴으로, 누구보다도 뜨겁게 불타오르는 낭만과 열정으로 내 인생에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다. 가끔 지난날을 돌이켜 볼 때가 있다. 내가 재수를 결심하지 않았더라면, 혹은 재수시절 이변이 일어나지 않아 공대에 합격을 했었더라면, 지금의 내 인생은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나의 꿈은 단순한 영어 강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김기훈 선생님이나 손주은 선생님과 같은, 강사이자 경영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남몰래 품고 있는 더 큰 포부는, 한국 영어교육의 올바른 길을 개척해 가는 교육자가 되는 것이다. 얼마 전 고려대 경영학과 이중전공 시험에 합격하여 경제학과 경영학 공부를 하며, 그리고 교직과목을 통해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찰하며 내 꿈에 한발짝 한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뜨거운 가슴을 안고 달린다. 내 심장이 뛰는 한 나는 달린다. 내 자신을 뛰어넘었던 그 순간, 난 내 운명을 바꾸었다.













Epilogue




  

학원 일과를 마치고 밤 열두시가 다된 늦은 시간, 귀가를 하다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지금 이렇게 피곤에 지쳐 길을 걷고 있음에도, 집에 도착하면  이젠 정말 지긋지긋한 수능 공부가 또 남아있다. 더 이상 수능 공부가 아닌, 이렇게 지쳐 쓰러질 것 같아도 집에 도착하면 해야 할 과외가 하나 더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하루 왼종일 열정적인 수업을 하고 이렇게 힘들더라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 누군가를 가르치며 꿈과 희망을 주는 일, 그런 일이 하나 더 남아있는 것이라면 난 정말 행복할 수 있을텐데...




시험기간에조차 한번도 쉬어본 적이 없는 과외수업. 시험공부와 과외수업으로 피곤에 지친 몸을 이끌고 밤늦게 귀가를 한다. 이젠 좀 쉬고 싶은데... 남들처럼 나도 좀 더 놀아보고 싶은데... 난 왜 이렇게 힘든 길을 또 자진해서 걷고 있는걸까. 부모님께 등록금, 용돈 받아가며 생활하면 대학생활이 좀 더 재미있고 행복할텐데...




밤하늘의 별빛이 축 처진 내 어깨를 두드린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이것은... 이것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모습. 과거의 난 저 하늘을 보며 다짐했었지, 바로 지금과 같은 삶을 살겠다고... 난 지금의 이 모습을 얼마나 오랫동안 꿈꿔왔던가. 지금의 난 과거의 내가 그토록 되고 싶어하던 바로 그 모습이 아닌가!




승리에 도취되어 벌써 난 그 기쁨과 감격을 잃고 있었다. 하지만 힘들 때마다 위를 올려다보면, 저 밤하늘은 언제고 내게 다시 깨우쳐준다. 난 해내고야 말았다는 것을. 난 행복한 사람이란 것을. 내 가슴은 다시 기쁨과 감격으로 벅차오른다. 난 지금 내 꿈을 이루고 있는 거야. 난 행복한거야.




행복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행복은 바로 내가 찾아내는 것이다. 행복은 어디에나 있다. 그것을 찾아내는 것도 매우 쉽다. 다만 어려운 것은, 행복이 지금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그것뿐이다.




재수는 내게 어떤 어려움도 극복해 낼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을 주었고

삼수는 내게 남은 평생을 바쳐 열정을 불태울 꿈을 주었다.




그 용기와 자신감으로 내 꿈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 난,

어느 누구보다도 행복하다.




- ‘내 꿈을 찾기까지’ 끝 -



profile

"손만 뻗어도 잡을 수 있는 꿈이 무슨 가치가 있는가?"


                       -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커피 한 잔에 담긴 성공신화" 中